발행일자 : 2012년 04월 10일 (1쇄 04년 5월) / 저자 : 다자이 오사무 / 분량 : 192쪽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저는 일본인이 쓴 소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문학적으로 일본 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제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인물들은 지나치게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고 사건은 극적이기보다 감정을 오래 응시합니다. 명쾌한 결말보다 여운을 남기고 책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일부러 일본 문학을 찾아 읽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권의 책만큼은 오래도록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자이 오자무의 <인간 실격>입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우울한 소설이 70년이 넘도록 사랑받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제 머릿속에 오래 남은 감정은 우울함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가 너무 낯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조금씩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같이 만나보시겠습니까?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도시락 반찬으로 먹고 싶은 것을 적어 오라고 합니다. 형제들은 먹고 싶은 반찬을 자연스럽게 적습니다. 그런데 요조는 끝내 아무것도 적지 못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형제가 적어놓은 반찬을 몰래 따라 적습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멈췄습니다. ‘먹고 싶은 반찬 하나 말하지 못하는 아이.’ 이 장면은 단순히 소심한 아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삶이 얼마나 일찍 시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된 요조는 여전히 타인의 마음만 먼저 살핍니다. 부탁을 받으면 거절도 못 하고 싫다고 말하여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을 무엇보다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결국 소설 속 요조의 삶은 점점 무너집니다. 술에 의지하고, 약물에 의지하고, 결국 삶마저 포기하려 합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장면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요조는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유지했지만 정작 자신과의 관계는 잃어버린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역할을 바꿉니다. 직장에서는 좋은 동료가 되고, 가족 앞에서는 좋은 자녀나 부모가 되고, 친구들 앞에서는 유쾌한 사람이 됩니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회는 역할 속에서 돌아가니까요. 문제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너무 익숙해져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순간입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인간의 삶을 하나의 연극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무대가 끝난 뒤에도 역할을 벗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 주는 여러분께 이 질문을 그대로 나눠보고 싶어졌습니다.
Q.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인간 실격>에 대한 일반적인 평은 '우울하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우울하지도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기 위해 쓰이지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애써 감추며 살아가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던 작품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실격>은 결국 ‘실격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린 인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 자신과도 잘 지내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