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특별기획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에서 성인 남녀 883명을 대상으로 성인 문해력 테스트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총 11문제를 15분간 풀게 했는데 테스트 참여자 883명의 평균 정답률은 55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문장을 읽습니다. 메신저를 읽고, 뉴스를 읽고, SNS를 읽고, AI가 요약한 내용을 읽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읽는 시간은 분명 늘어났는데 이해하는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EBS에서 실시한 테스트가 아니더라도 실제 최근 학교와 기업에서는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계약서를 읽고도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긴 보고서를 끝까지 읽기 어려워하며, 뉴스 제목만 보고 내용을 판단하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독서량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주 소개할 <다시 책으로>에서는 우리가 책을 덜 읽게 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어린 독자에게는 읽기에 필요한 신경회로를 발달시킬
유전적 프로그램이 없다는 뜻이지요
이 책의 저자 메리언 울프는 문학평론가도 독서교육 전문가도 아닙니다. 인간의 뇌가 읽기를 배우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해 온 인지신경과학자입니다. 그녀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인간은 원래 읽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걷고 말하는 능력은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달했지만 읽기는 다릅니다. 문자가 만들어진 역사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짧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뇌에는 원래 읽기를 담당하는 전용 기관이 없습니다. 대신 뇌는 시각을 담당하는 영역, 언어를 이해하는 영역,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 추론하는 영역을 서로 연결해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 냅니다. 메리언 울프는 이것을 '읽기 회로'라고 설명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회로가 단순히 글자를 해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깊이 읽는 동안 우리는 문장의 의미를 추론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공감하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고,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반박합니다. 즉 읽기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하는 행위입니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사람들이 책을 덜 읽는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디지털 환경이 우리의 읽기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을 인정합니다. 다만 한 가지를 경계합니다. '빠르게 훑어보는 읽기(스키밍)'가 우리의 기본 습관이 될 때입니다.
인터넷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핵심만 찾고, 제목만 읽고, 키워드만 훑는 읽기에 익숙해집니다. 문제는 이러한 읽기 방식이 책을 읽을 때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이를 '깊이 읽기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깊이 읽기는 단순히 천천히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한 문장을 붙잡고 의미를 곱씹고,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질문하며,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이 능력이 약해질수록 우리는 더 빨리 읽을 수는 있지만, 더 깊이 이해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디지털 기술을 버리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디지털 읽기와 깊이 읽기를 모두 할 수 있는 '양손잡이 뇌'를 길러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빠르게 정보를 찾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한 권의 책 앞에 오래 머물며 질문하고 사유하는 능력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문해력의 위기는 책을 읽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잃어버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 주는 이런 질문을 품어보면 어떨까요?
Q.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소비했을까? 그중 내 생각을 바꿀 만큼 깊이 읽은 문장은 과연 몇 개였을까?
AI가 더 많은 정보를 대신 읽어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더 필요한 능력은 읽기를 포기하지 않는 힘입니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단지 독서 습관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인간으로 남기 위한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강력한 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