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용산 아이맥스관 이른바 ‘용아맥’의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한 경쟁 때문입니다. 예매가 열리면 수만 명이 몰리고, 정가 2만 원 안팎의 영화표가 중고거래 시장에서 10만 원을 넘기기도 합니다.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책을 펼쳐 혼자 읽던 이야기도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랜 구전 전통 속에서 사람들이 듣고, 기억하고, 다시 들려주던 이야기가 서사시의 형태로 전해졌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보기 위해 2026년의 사람들은 치열한 예매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부족한 시대를 지나 이야기를 다 볼 시간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AI에게 몇 줄의 문장을 입력하면 세상에 없던 이야기도 몇 초 만에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대에 우리는 왜 2,800년 된 이야기에 다시 열광하고 있는 걸까요?
오래된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오디세이아>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계속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글이 되고, 그림과 연극이 되고, 소설이 되고, 이제 거대한 스크린 위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제임스 조이스가 <오디세이아>를 <율리시스>로 다시 읽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10년에 걸쳐 지중해를 떠돌았던 거대한 모험은 조이스에게 와서 1904년 더블린에 사는 평범한 남자의 ‘하루’가 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한 가지 생각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는 변하지 않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20대에 읽었던 책을 40대에 다시 펼쳤는데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질 때.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에서 한참을 멈추기도 합니다. 책은 그대로인데 그 책을 읽고 해석하는 내가 달라진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노래 중에 '명곡'의 기준은 리메이크된 버전이 있느냐라고. 그리고 그 명곡은 세월이 지나도 새로운 목소리와 편곡을 입고 다시 불립니다. 원곡이 지닌 단단한 멜로디의 뼈대 위에 새로운 시대의 감각과 감정이 덧입혀질 때 비로소 그 노래는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얻는 것이죠.
<오디세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800년 동안 무수히 리메이크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원곡인 셈입니다. 같은 작품인데 관점을 어디에 놓느냐만 다른 거죠. 그런 의미에서 관점이란 남들과 다른 세상을 보는 능력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능력인지도 모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AI시대에 논의되는 '창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훌륭한 창작자는 어쩌면 누구보다 훌륭한 독자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남들과 다르게 읽어내는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발견하는 사람. 그리고 그 오래된 질문을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건네는 사람.
어쩌면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한 것에서 아직 보이지 않던 것을 발견하는 능력. 저는 요즘 그 능력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AI 시대를 준비하려면 질문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좋은 질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눈.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 주는 여러분께 이 질문을 나눠보고 싶어졌습니다.
Q. 당신은 오늘 무엇을 발견했나요?
AI는 앞으로 우리가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할 만큼 많은 이야기와 해석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많이 만드는 사람보다 익숙한 것에서 아직 보이지 않던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경쟁력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800년전 <오디세이아>가 지금까지 계속 다시 읽히고 있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인지 모릅니다. 이야기는 오래되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은 계속 달라졌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