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어쩔'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이 표현들이 우리 일상에 가장 깊숙이 스며든 말 중 하나이자, 어쩌면 어떤 욕설보다도 더 차갑고 서늘한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벼운 말장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단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퍼져 나갔고, 얼마 전에는 제가 보낸 레터의 피드백 창에 단 한마디, “어쩔”이라는 말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웠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곧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상대를 단번에 차단하고, 대화에서 이긴 듯한 기분을 주는 그 짧은 말 한마디 뒤에서 우리의 내면은 정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요? 이번 주에 제가 꺼내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가져온 책이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유튜브 쇼츠에 쉽게 빠져드는지, 왜 책 한 권조차 끝까지 읽기 어려워졌는지를 추적하며 현대인의 집중력이 무너지는 원인을 탐구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집중력’만이 아니라, ‘어쩔’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더 거대한 위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 요한 하리는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을 '스키밍(Skimming, 훑어 읽기)'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이제 글뿐만 아니라 사람도 훑어 읽습니다. 상대의 의도나 감정의 맥락을 깊이 파고들기보다, 표면만 슥 보고는 "내 관심사가 아니야" 혹은 "귀찮아"라며 '어쩔'이라는 버튼을 눌러 창을 닫아버리는 것이죠.
너는 단 하나뿐인 네 삶을 놓치고 있어! 바로 네 눈앞에 있는 것
요한 하리는 이 책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타인을 차단하고 자극적인 짧은 반응에 의존할수록, 우리 뇌의 '몰입(Flow)' 능력이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복잡한 의견을 듣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뇌에게 아주 훌륭한 근력 운동입니다. "어쩔"이라고 답하는 순간, 당신은 그 운동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셈입니다. 뇌는 편해지겠지만, 점차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얄팍한 지능'에 갇히게 됩니다.
또한 나와 다른 세계를 가진 타인의 목소리는 나의 영토를 넓혀줄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 문을 "어쩔"이라는 빗장으로 걸어 잠글 때, 당신의 세계는 딱 당신이 아는 만큼만 남겨진 채 아주 작은 감옥이 되어버립니다. 요한 하리는 집중력을 되찾는 것이 단순히 업무 효율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를 되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보태고 싶습니다.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나의 뇌와 세계가 얄팍해지지 않도록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라고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당신의 세계가 더 깊어지고, 당신의 집중력이 도둑맞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쩔"이라는 마침표 대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라는 쉼표를 찍어보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인문학적 저항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는 이 질문을 한 번 따라해볼까요?
Q.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집중력이 아니라 끝까지 서로의 말을 들어낼 수 있는 인간다운 마음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