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멀리 보이는 산이 유독 시리게 파랄 때가 있습니다. 레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길 잃기 안내서>에서 이 아름다운 푸른색이 사실 산의 색이 아니라 나와 산 사이를 채우고 있는 ‘대기의 색’이라고 말합니다.
흥미로운 건, 그녀가 이 이야기를 단순한 풍경 묘사로 끝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솔닛은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 역시 닿지 않는 거리에 있다고 말합니다. 완전히 소유할 수 없고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바라보고 더 오래 머물게 된다는 것이죠. 길을 잃는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길을 잃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익숙함에서 벗어나 세계를 새롭게 감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AI는 우리가 건너야 할 수만 킬로미터의 대기를 단숨에 압축해 버립니다. 궁금한 것은 즉시 해결되고, 고민의 과정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생략되죠. 정답에 도착하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이를 채우던 푸른 대기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AI가 정답을 대신 써줄수록 우리가 더 의식적으로 지켜야 할 ‘사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길을 잃은 것인가다
먼저 성급히 결론 내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상태를 불편해합니다. 그래서 불확실함 앞에 서면 마음은 빠르게 결론으로 달려가려 하죠. 하지만 솔닛이 말하듯, 길을 잃는 상태는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익숙한 좌표를 잃어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넓은 세계를 감각하게 됩니다. 안개 속을 걷듯 답답하더라도,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그 상태를 견디는 힘—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첫 번째 거리입니다.
두 번째는 이해했다고 단정하지 않는 거리입니다. 데이터는 사람을 단순화하고, AI는 우리를 몇 가지 키워드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솔닛은 타인과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알 수 없음’이 관계를 살아 있게 만든다고 말하죠. 누군가를 다 안다고 단정하는 순간, 그 사람을 향한 탐색은 멈춥니다. 대신 그 주변을 천천히 맴도는 태도, 끝까지 다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예의가 필요합니다. 그 한 걸음의 거리가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존중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즉답 대신 질문을 남겨두는 거리입니다. AI는 질문에 즉시 답을 내놓지만, 삶의 중요한 깨달음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합니다. 솔닛 역시 책 전반에서 정확한 해답보다 지속되는 질문이 우리의 사유를 확장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답을 서두르기보다, 질문을 그대로 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허락하고, 내 안의 울림이 충분히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 여유 속에서 비로소 ‘나의 언어’가 만들어집니다.
압축된 거리 속에서는 파란색을 볼 수 없습니다. 파랑은 오직 우리가 기꺼이 지켜낸 그 아득한 거리 속에만 머물기 때문입니다. 닫아버리면 당장은 편해지겠지만 그와 동시에 질문과 기다림, 그리고 우리가 진짜로 회복될 가능성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에 여러분과 이러한 질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Q. 오늘 당신이 기꺼이 책임지고 싶은 ‘거리’는 무엇인가요?
서둘러 지워버리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당신만의 푸른 대기를 끝까지 지켜내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