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런 날 없으신가요? 온종일 바쁘게 이것저것 한 것 같은데 저녁이 되니 문득 "오늘 내가 도대체 뭘 했지?" 싶은 날요. 정신없이 일하다가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영상을 멍하니 보고 메신저에서 자동 완성되는 문구로 대화를 끝내고, 배달 앱이 추천해 주는 메뉴로 식사를 해결하는 그런 하루 말이죠.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내가 지금 내 의지로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거대한 시스템이 짜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걸까?' 어쩌면 나는 프로그램 코드 중 하나이고 진짜 나는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거대한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어 효율적인 가동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제 철학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우리 일상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오늘 그 답의 실마리를 한 권의 소설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조시가 되어주렴 vs 조시의 안에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요
오늘의 주인공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 등장하는 클라라입니다. 클라라는 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인공지능 친구(AF)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로봇들과 조금 다릅니다.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클라라는 세상을 사각형의 칸으로 나누어 인식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집요하게 학습하죠.
클라라는 자신을 구매한 소녀 조시를 진심으로 아낍니다. 조시가 원인 모를 병으로 시들어갈 때, 태양광 에너지로 작동하는 클라라는 창고 안의 먼지떨이 조차 살려내는 '태양의 힘'을 믿기로 합니다. 그녀는 조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태양에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시를 고쳐주세요. 태양은 자비로우시니까요." 논리적인 로봇이 '신앙'에 가까운 희망을 품는 순간, 우리는 묘한 울림을 느낍니다.
하지만 소설은 중반 이후 우리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조시의 부모가 조시가 세상을 떠날 경우를 대비해 클라라에게 조시의 모든 행동과 말투, 기억을 학습시켜 조시의 복제품이 되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 조시의 복제품이 된 클라라는 조시인가요? 클라라인가요? 여기서 우리는 세 명의 철학자를 소환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데카르트입니다. 그가 선언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 따르면 클라라가 조시의 사고 회로를 완벽히 복제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녀는 조시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클라라의 생각은 데이터의 조합일까요, 아니면 영혼의 울림일까요?
흄은 자아란 고정된 알맹이가 아니라, 우리가 겪은 인상과 기억들이 엮인 '지각의 묶음'이라고 보았습니다. 만약 클라라가 조시의 모든 기억(Data)을 넘겨받는다면, 흄의 관점에서는 클라라가 곧 조시가 되는 셈입니다.
끝으로 마르틴 부버는 인간다움이 개개인의 내부가 아닌, '관계'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시를 도구로 보지 않고 진정한 인격체로 대했던 클라라의 헌신적인 마음. 부버라면 클라라가 조시의 껍데기를 복사하는 것보다 조시를 위해 기도하던 그 '관계의 순간'에 인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클라라는 조시가 되기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조시의 안에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조시의 내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었죠"
우리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내 안에 든 정보량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와 나누었던 서툰 대화, 함께 흘린 눈물 그리고 타인의 마음 속에 내가 만들어놓은 유일무이한 방이었던 겁니다. 그 방의 열쇠는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고 어떤 AI도 그 방에 대신 들어갈 수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는 여러분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당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을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효율적인 업무 처리나 완벽한 성과보다 동료에게 건네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나 가족과의 짧은 산책이 당신을 더 '당신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Q. 당신을 대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며, 오늘 하루도 당신만의 온기로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