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가을에 김숙영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매우 조심스럽게 꺼내는 작가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조심스러움은 어쩌면 ‘솔직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진심을 대하는 책임감’에 가까웠습니다. 그 만남 이후, 우리는 모자람을 드러내는 용기를 내어 글의 방향을 함께 잡아갔습니다. 스스로의 결핍을 감추기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과정. 그것이 <오늘도 나를 다정히 안아주는 중입니다>의 시작이자, 이 책의 핵심 기획 의도였습니다.
모자람을 마주하고 있는 <오늘도 나를 다정히 안아주는 중입니다>를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완벽함’을 기준으로 세운 구조를 되돌아보는 인문학적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결국 ‘모자람’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산업화와 성과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존재의 결격’이라는 낙인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타인의 인정에 의존해 살아온 삶을 깊이 성찰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갑갑하고 초조했을까"라는 문장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회적으로 금지당한 감정들을 다시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줍니다.
“모자람이 드러나는 순간, 존재 자체가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이번주 대중이 책(Book)에서 택한 트렌드 한 문장(북택트)은 김숙영 작가가 큰 용기를 내어 전한 고백입니다. 최근 경제적·관계적 박탈감과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자기돌봄과 위로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숙영 작가는 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합니다. 왜 우리는 '모자람'을 이토록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이 <오늘도 나를 다정히 안아주는 중입니다>를 단순한 위로의 책이 아닌, 사회적 성찰의 텍스트로 만듭니다.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강박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우리 사회는 '모자람'을 결함으로 '불완전함'을 실패로 규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자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모자람'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이자 연결의 가능성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진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더 나은 나'를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수용'보다 '변화'를,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되어야 할 나'를 선택합니다. 성과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진정 필요한 것은 '모자람을 드러내도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품격이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조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질문은 이것입니다.
Q. 나의 모자람을 드러내도 괜찮은 관계, 괜찮은 공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개인의 치유를 넘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습니다. ‘모자람’을 부정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그 안에서 관계의 가능성과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살아갈 이유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