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점가에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2,500년 전 고전인 <손자병법>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것입니다. 왜 지금, 이 오래된 병법서가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답은 시대의 요구에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기는 법'이 아닌 '무너지지 않는 법'을 갈망합니다.
팬데믹과 경기침체, AI 대전환이 겹쳐진 시대. 예측이 불가능하고, 계획은 쉽게 무너지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질문이 변했습니다.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버틸 것인가"로.현대지성판 <손자병법>은 바로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승리의 기술’이 아니라 ‘불태(不殆)의 철학’. 즉, 위태롭지 않게 서 있는 상태, 싸우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기술 말이죠.
손자는 싸움에서의 승리를 기술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언제나 상황을 읽는 능력과 준비의 태도입니다. <손자병법>곳곳에서 반복되는 메시지는 단 하나, “위태로움을 만들지 말라.” 싸움이 불가피하더라도, 위험한 싸움은 피하고 불리한 자리에 서지 않는 것, 그것이 손무가 말하는 최고의 전략입니다.
그에게 승리란 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그의 통찰은, 충돌 자체를 사전에 방지하는 설계의 힘을 강조합니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전쟁 이론을 넘어선 균형과 절제의 예술입니다. 언제 나아가고, 언제 물러설지를 아는 판단의 지혜입니다.
“승리하는 자는 먼저 이기고 나서 싸운다”
이번주 대중이 책(Book)에서 택한 트렌드 한 문장(북택트)을 이렇게 읽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먼저 내 안의 불안을 이겨낸 사람,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균형을 가진 사람만이 현실의 싸움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고전은 같은 문장을 읽더라도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허락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손자병법>의 유명한 구절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보통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이긴다”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원문에서 손무가 말한 ‘불태(不殆)’는 이긴다(勝)가 아니라 위태롭지 않다(不殆) 입니다. 즉, 이 구절의 초점을 ‘승리’가 아니라 ‘위태로움의 회피’에 두면 완전히 다른 길이 열립니다.
적을 분석하라는 말은 단순히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위험도를 끊임없이 인식하라는 경고입니다. 지피지기는 ‘정보전’이 아니라 ‘자기인식’의 철학이었던 셈이죠. 이처럼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옛 지혜를 단순히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재배치하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Q. 나는 이 책을 이해하려고 읽고 있는가, 아니면 이 책을 통해 나를 이해하려고 읽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독서의 태도만을 묻지 않습니다. 고전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문장을 통해 무엇을 보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이 오래된 병법이 오늘 다시 읽히는 이유는, 결국 우리 각자가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