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통해 주목받게 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2025년 4월 임기를 마감했습니다. 퇴임 4개월 후 출간된 저서 <호의에 대하여>는 법관으로서의 엄중함과 인간으로서의 온정 사이에서 길어올린 깊은 성찰을 담아내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습니다.
헌법재판관 출신의 저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특히 자전적 성격이 강한 책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자가 화제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한국 사회가 불확실성과 피로 속에서 흔들리고 있고, 신뢰는 점점 희소해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 책에 대한 갈증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문형배 저자는 책에서 재판관 시절 만난 사건들을 떠올리며, 법정의 언어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던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판결문 속 단호한 문장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정의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보여주지요. 가령, 버스 좌석을 양보하는 사소한 장면 속에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의 뿌리를 발견합니다. 또 한 청년의 절박한 사정을 담은 사건 기록 앞에서, ‘법의 잣대’와 ‘인간의 사정’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를 깊이 성찰합니다.
이렇듯 <호의에 대하여>는 공적인 원칙과 사적인 온기를 교차시키며 묻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는 판결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일상의 태도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독서와 체험이 필요하다. 다수의 삶에 무지한 것은 아닌가? 다수의 삶에 무감각한 것은 아닌가 성찰해야 한다 ”
이번주 대중이 책(Book)에서 택한 트렌드 한 문장(북택트)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혹시 타인의 고통에 무지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회적 약자의 삶을 외면하며 무감각 속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호의는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용기에서 출발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악은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일상의 무심한 무감각에서 자라납니다. 따라서 호의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서, 무감각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다수의 삶에 감각을 여는 실천적 태도입니다.
독서는 이러한 감각을 기르는 핵심적 통로입니다. 몽테뉴의 표현대로 "독서는 타인의 삶을 빌려 사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한계와 무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호의에 대하여>가 제시하는 핵심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수의 삶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고, 직접적 체험을 통해 감각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사나 거대한 담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의 사소한 호의, 다수의 삶을 향한 진실한 공감, 무감각을 거부하는 작지만 지속적인 성찰이야말로 흔들리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실질적 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는 다음과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Q. 나는 지금, 다수의 삶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무감각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 답은 거창한 철학 속이 아니라, 오늘 만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거나,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책 한 장을 천천히 넘기는 소박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