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감정은 넘쳐나지만, 진심은 오히려 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무엇이든 빨리 소비되고, 빠르게 흘러가지만,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천천히 아픕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과장된 위로보다 조용한 공감에 더 끌리고, 화려한 서사보다 담백한 문장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애란 작가의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현상은 단순한 문학적 인기 그 이상으로 이런 시대의 마음을 담아낸 문화적 신호입니다.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보다 '진짜 같음'에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구나 알 법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직장에서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가족과의 미묘한 거리감을 느끼며, 예기치 못한 작별 앞에서 어색하게 서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은 특별하지 않지만, 바로 그 특별하지 않음이 오히려 우리 자신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애란 작가는 감정을 크게 외치지 않습니다.
“안녕 그래 세상 많은 안녕”
이번주 대중이 책(Book)에서 택한 트렌드 한 문장(북택트)을 보면 감정이 흘러가는 자리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은미’는 어머니의 오랜 병간호와 죽음을 경험한 뒤, 공백기를 거쳐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하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일터의 공기와 애매한 관계 속에서 서툴게 하루하루를 견딥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예전에 잠깐 사귀었던 외국인 남성으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함께 온라인 회화를 하자는 제안이지만, 그 안에는 풀리지 않은 감정과 말하지 못했던 ‘안녕’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안녕'이라는 단어가 갖는 다층적 의미입니다. 이별의 인사이면서 동시에 평안을 빌어주는 말이고, 때로는 안부를 묻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은미가 건네는 '안녕'에는 용서와 아쉬움, 그리움과 놓아줌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그 ‘안녕’들 사이를 조용히 걸어다닙니다. 크게 울리지 않지만 오래 남는 여운으로,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고, 아무 일 없는 척 견디고 있던 우리의 마음에 천천히 말을 걸어옵니다.
김애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상실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의 삶에나 찾아오는 일상의 일부이며,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죠. 그래서 이 소설은 비극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상실 이후의 회복을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의 안내서처럼 다가옵니다.
어쩌면 우리 각자에게도 말하지 못한 ‘안녕’이 하나쯤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헤어진 사람에게, 지나간 시간에게, 혹은 예전의 나 자신에게. 그 인사를 아직 마음속에 붙들고 있다면, 오늘은 조용히 꺼내보아도 좋겠습니다.
Q.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안녕'은 무엇일까?
이번 주는 여러분의 '안녕'을 떠올려보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 안녕이 아직 미완성이어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끝나지 않은 인사가 우리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