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혼모노
발행일자 : 2025년 3월 28일 / 저자 : 성해나 / 출판사 : 창비
여러분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무엇에서 찾으시나요? 저는 소설(小說)이 문자 그대로 'small talk(잡담)'처럼 보이지만 농담 같은 진담이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서 재미를 찾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관점에서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일상적인 대화나 사소한 에피소드 속에 얼마나 깊이 있는 통찰을 숨겨두었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현재 주요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작가가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갈등 지점들을 예리하게 포착한 것이 핵심적 역할로 작용하여 지속적인 판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혼모노>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 세대 간 갈등, 정체성의 혼란 같은 민감한 주제를 정면에서 다루면서도, 그것을 감정 과잉이나 도식적인 구도로 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밀한 관찰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게 만들죠.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이번주 대중이 책(Book)에서 택한 트렌드 한 문장(북택트)이 나오는 장면은 30년 차 무당 문수가 자신의 신령을 젊은 신애기에게 빼앗긴 후 작두 위에서 피범벅이 된 채 춤추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그는 '가벼워진다'고 표현합니다. 문수에게 신령은 30년간 자신을 정의해온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것은 상실감이 아니라 오히려 가벼움이라는 거죠.
나아가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문수는 신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짜' 무당이 되었을 때 '진짜' 자신을 찾게 된 것입니다. 신령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몸짓으로 춤추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권위 구조와 세대 갈등을 예리하게 진단합니다. 신애기의 당차고 예의 없는 행동이 기성세대인 문수의 기득권을 위협할 때, 문수가 보여주는 반응은 분노나 절망이 아닌 해방입니다. 이는 진정한 성숙이 무엇인지, 그리고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혼모노>는 단순히 극적인 사건이나 자극적인 소재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인물의 내면과 관계의 미묘한 균열에서 진짜 이야기를 길어 올립니다. 문수의 해방감, 신애기의 당돌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권위와 정체성의 문제는 비단 소설 속 무당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일상에서 ‘진짜’와 ‘가짜’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스스로 정의한 정체성에 얽매이기도, 혹은 그것을 내려놓고 비로소 자유로워지기도 하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혼모노>를 읽으며,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 하나쯤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잡담’이자, 진지한 대화가 되어줄 것입니다.
소설이 건네는 이 조용한 질문에, 오늘은 잠시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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