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이 한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주 마른 체형의 작은 여성이 자신보다 세 배는 커 보이는 남성을 힘으로 쓰러뜨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광경에 놀라고 있는데 그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거 AI가 만든 영상이야.” 그 말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예전의 AI 영상에는 어딘가 어색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이 영상에는 그런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진실을 판단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감동적인 에세이를 읽다가도 “이 글, AI가 쓴 건 아닐까?” 하고 출처를 확인하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말과 글, 이미지까지. ‘누가 말했는가’에 대한 의심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할 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바로 이 불신의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소설의 출발은 다소 엉뚱합니다. 평생 괴테를 연구해 온 주인공이 식당에서 우연히 발견한 홍차 티백 하나. 그 꼬리표에 적힌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섞는다’는 멋진 문장이 사실은 괴테가 한 번도 한 적 없는 말이라는 의심에서부터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명언을 이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이번주 대중이 책(Book)에서 택한 트렌드 한 문장(북택트)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발화의 출처(Source)’를 끝까지 묻고자 하는 주인공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에서 주인공은 그 문장이 과연 괴테의 진짜 말인지를 밝혀내는 일을 멈춥니다. 그 문장이 누구의 말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끝내 남는 것은 단 하나, 그 문장이 도이치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현대 언어철학자 오스틴은 '말은 세상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행한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이 단순히 감정의 묘사가 아니라, 사랑을 약속하는 '행위'인 것처럼 말이죠. 티백 꼬리표에 적힌 문장이 누구의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그 말이 주인공에게 닿아 그의 삶을 '잼'에서 '샐러드'로 변화시켰다면, 그 순간 그 말은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될테니까요.
지금 우리의 타임라인을 채우는 수많은 말들 중, 진짜 내 삶을 움직이는 말은 몇 마디나 될까요? 권위에 기댄 앵무새의 말이 아니라 비록 출처는 불분명해도 내 삶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말. 언어의 불신 시대를 건너는 힘은 바로 그 '태도'에 있지 않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이번 주에는 이런 질문을 여러분과 나눠보고 싶습니다.
Q. 이번주 나에게 다가온 묵직한 말은 나에게 무엇을 하게 했는가?
AI가 말과 영상 그리고 이미지를 무한히 만들어내는 시대에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언어의 힘은 삶 안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증명되기 때문이죠.